팍스시니카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급속한 경제회복을 보이면서 팍스시니카(중국 중심의 시대) 도래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 글로벌판이 24일 보도했다.신문은 역대 경제위기 극복과정은 주로 미국이 이끌고 유럽에 이어 나머지 국가들이 선진국 영향을 받아 위기에서 회복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처음으로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지금의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은 중국과 아시아 국가들이 주도하고 있음을 주목했다.경제학자들은 중국이 언젠가는 미국의 강력한 경쟁상대로 부상할 것이며 미국을 제칠 수 있다고 예견해왔지만 그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신문은 강조했다.신문은 크레디트스위스 뉴욕사무소의 닐 소스 수석연구위원의 말을 빌어 "세계 경제구도의 중심이 변화해오고 있지만 이번 경제위기이야말로 또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며 "그 방향은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특히 신문은 아시아 중에서도 정부 주도의 경기부양책으로 적극적인 위기탈출에 나선 중국에 주목했다.중국 경제 현황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지만 앞으로 나타날 부작용을 떠나 현재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음이 분명해보인다고 신문은 평가했다.스타 경제학자인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시아 경제 전망에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다. 로고프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소비자들의 소비를 해주지 않는 이상 아시아로는 대안이 없을 것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신문은 "하지만 중국 경제 구조는 변하고 있다"며 "중국 내수가 늘어나면서 국제유가가 올해 두배로 뛰고 미국채 매입를 지속하는 것도 중국의 왕성한 소비욕구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신문은 또 올해 상반기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일본의 최대 무역국가로 부상했고 유럽국가들도 수출타깃을 서구에서 아시아로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독일수출협회의 옌스 나겔 책임자는 "우리가 미국과 교역에서 잃은 것들을 아시아에게서 보상받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신문은 단기적으로도 미국은 아시아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며 무엇보다 미국 경제가 하반기에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도 아시아로부터 협조가 있기에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소스 수석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수요가 되살아나면서 미국 수출입이 호전되고 있다"고 말했다.PC업체인 HP는 올해 중국내 두자릿수 성장을 전망했고 미국의 대중국 수출이 지난 1월 41억달러에서 6월들어 55억달러로 증가하는 등 호전기미가 확연하다고 신문은 덧붙였다.신문은 중국 성장이 한국ㆍ대만 등 인근국가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며 덕분에 미국 산업생산도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신문은 씨티그룹 등 금융회사들이 중국 경제성장률을 잇따라 상향조정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신문은 "보수적으로 정평이 난 독일의 도이체방크가 최근 '유로존의 경제성장은 중국이 만들어준 것인가'라는 보고서를 냈다"며 "프랑스의 중국을 비롯한 대동북아 수출은 지난 2분기에 18.7% 증가했으며 이는 직전 분기 16.2% 감소에 비해 확연한 변화"라고 직시했다.신문에 따르면 도이체방크의 질 모에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동북아 수출이 호조를 보인 2분기 유로존 경제는 6.3% 플러스성장했으며 반대로 수출이 급감한 1분기에는 6.2%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다는 점은 아시아 수요 증가가 유로존 경제에 매우 큰 영향을 줬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그동안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 성장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운 변화"라고 평가했다.신문은 또한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연구위원을 역임했던 사이먼 존슨 패터슨국제경제연구소 시니어 팰로우의 말을 빌어 중국이 아프리카와 남미에 정치ㆍ경제 영향력을 날로 키우고 있다는 점도 팍스시니카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팍스시니카 시대가 온다
지난 몇 년 간 중국이 두자리수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고속 성장하자 세계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의 뒤를 이어 '팍스 시니카(중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머지않아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전 세계를 휩쓴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우리에게 성큼 다가섰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얼마되지 않아 중국 톈진(天津)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제2차 '새 챔피언들의 연차총회'(하계
다보스포럼)에서는 팍스 시나카 시대의 예고편을 보는 것 같았다. 당시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포럼에 참석한 글로벌 재계 인사들이나 전문가들은 세계 이머징 마켓의 강자로 떠오른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발언을 줄줄이 쏟아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예상보다 빨리 둔화되는 경제 성장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이 4조위안(585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하자 세계 증시는 일제히 환호했다. 지난 3월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때는 중국이 추가 부양책을 발표하지 않을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고 중국이 경제지표나 성장률 전망에 시장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가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됐듯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세계 경제 질서가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 세계 1위 경제대국 야심= 린이푸(林毅夫) 세계은행 부총재 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오는 2020년에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중국 경제가 향후 20~30년간 고속성장을 달성할 것이며 다른 나라들은 후퇴 기미를 보이는 반면 중국은 전진을 계속할 것"이라며 "구매력으로 평가해보면 2020년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도이체방크의 마쥔(馬駿) 이코노미스트도 이르면 2020년 초 중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앞으로 10년 후에는 세계 경제에서 이머징마켓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70%로 크게 확대될 것"이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머징마켓이 중국 경제 성장을 뒷받침해줄 것"이라고 분석했다.또한 영국 노팅엄대학의 야오수제(姚樹潔)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중국 경제 성장률이 7~8%에 달해 일본을 따라잡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막강한 재력을 가진 블랙홀= 2조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최대 외환보유고를 기반으로 중국은 원자재 및 기업 사냥에 나서며 막강 차이나파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올해 들어 중국은 더욱 공격적으로 해외 인수합병(M&A)에 나섰다. 지난 주 세계는 제너럴모터스(GM)의 허머 브랜드를 중국의 중장비를 제조하는 쓰촨(四川)성 텅중(騰中)중공업이 인수했다는 소식에 떠들썩했다. 포드의 볼보 역시 지리(吉利) 등 중국 자동차 업체에 매각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월 중국의 10대 철강업체인 화링(華菱)그룹은 호주의 3위 철광석 생산업체 포르스쿠메달그룹(FMG)의 지분 16.84%를 확보했으며 중국 3대 철강업체인 우한(武漢)강철은 지난 3월말 캐나다의 광산업체인 컨설리데이티드 톰슨의 지분 19.9%를 인수했다. 비록 무산됐지만 중국알루미늄공사(Chinalco·차이날코)는 세계 3위 광산업체인 리오틴토를 195억달러에 인수하려고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중국은 앞으로 더욱 공격적으로 해외 자원과 기업 사냥에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중국의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의 행보도 주목된다. CIC는 지난해 약 5%에 가까운 수익율을 올리며 부진했던 다른 주요 국부펀드들을 압도했다. CIC 역시 모건스탠리와 블랙스톤 등에 대한 투자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지난해 현금 보유를 늘리고 해외 투자를 줄이며 이같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CIC는 최근 투자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구조조정과 함께 월가 출신 전문가를 기용하는 등 공격적인 해외 투자를 위한 사전 준비를 마쳤고 지난 4월1일에는 모건스탠리 글로벌 부동산펀드에 투자하기로 결정하며 해외 투자를 재개했다. 이어 러우지웨이(樓繼偉) CIC 회장은 지난 4월18일 보아오포럼에서 유럽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혀 앞으로 공격적인 해외 투자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세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중국은 한발자국씩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격상시키기 위한 야심을 드러내며 이를 위한 기반 다지기에 본격 나섰다. 지난 4월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기축통화가 필요하다"며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중국은 아시아 뿐 아니라 유럽 및 남미국가와의 통화스왑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의 국제통화스왑 규모는 한국과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6개국과 6500억위안(약 953억달러)에 달한다. 일부 무역 파트너 국가들과는 무역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 중국 국무원은 중국 국무원은 광둥(廣東)성 주장(珠江)삼각주와 상하이(上海)시 인근 창장(長江)삼각주 및 홍콩특구, 마카오특구 기업들 간의 무역거래에서 위안화 결제를 허용키로 했다. 또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 회원국들도 중국 광시(廣西)장족자치구 및 윈난(雲南)성과의 무역거래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 러시아와 브라질과도 양국 화폐로 무역대금 결제를 추진키로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지난달 HSBC와 동아은행이 홍콩에서 위안화 표시 채권(판다본드)를 발행하는 것을 허용했다. 외국기업이 판다본드를 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를 통해 외국기업들은 위안화 자금 조달 루트를 더욱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같은 조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위안화 수요를 자극하는 한편 위안화의 국제적 영향력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은행감독관리위원회(은감위)의 장광핑(張光平) 부주임이 2020년에는 위안화가 글로벌 외환보유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를 넘을 것이라며 세계 4대 기출통화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베이징의 ‘코리아타운’인 왕징(望京)에서 자동차로 20분가량 북쪽으로 달리면 징청(京承)고속도로 우측에 고려영(高麗營)이라는 마을이 있다. 대형 온천단지가 들어서 있고 연근을 키우는 농가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다.이곳이 1,3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살던 ‘코리아 타운’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해석이 분분해 혹자는 우리 고구려의 영토였다고 말하고 혹은 고구려 유민의 수용소였다고 주장한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당 태종을 격퇴하고 여세를 몰아 베이징 지역까지 점령했다는 야사가 전자의 근거지만 사람들은 당나라 같은 아시아 최대 강국을 약소국인 고구려가 점령했을 리가 없다는 후자의 추론에 더 귀를 기울인다.동아시아에서 수천년간 패권국가로 군림했던 중국이 졸지에 반(半)식민지로 전락해 굴욕의 세월을 보내다가 이제 다시 세계 중심국가로 화려하게 부활했다.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미국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G2’의 한 축으로 떠올랐고 이젠 ‘팍스 시니카’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들릴 정도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차 대전 직후 ‘팍스 브리태니커’시대의 종언과 ‘팍스 아메리카’의 개막을 예고하며 ‘하나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듯 그로부터 다시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인류는 또 다른 ‘하나의 시대’가 끝나는 시점에 서 있는 것일까.
기자의 생각으로는 ‘팍스 아메리카’의 종언을 고할 ‘팍스 시니카’의 시대가 그리 쉽게 올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군사력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에서 중국은 아직 미국과 차이가 크다. 그나마 경제력에서 30년쯤 뒤에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추월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그렇게 돼도 1인당 GDP는 미국의 5분의1 수준이다. 여기에다 중국은 심각한 내부문제를 안고 있다. 빈부격차와 지역불균형, 압축성장에 따른 복합 모순들, 그리고 정치ㆍ사회ㆍ문화 전반에 걸쳐 개혁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이 모든 것들이 ‘팍스 시니카’를 향한 중국의 전진을 가로막을 것이다.하지만 중국은 경제ㆍ외교ㆍ군사 등 모든 부분에서 분명히 강해졌고 이런 중국의 변화는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당장 중국 기업에 취업하는 한국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는 중국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해 한국인 직원을 두는 일도 흔해질 것이다.이 시점에서 우리는 중국의 발전이 우리의 이익으로 직결되도록 방향을 잡고 이를 실행할 시스템을 갖추는 일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부실한 대(對) 중국전략을 올바로 가다듬고 부족한 중국전문 엘리트를 제대로 키운다면 ‘팍스 시니카’는 우리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치킨게임’ 함정에 빠져든 듯우리도 긴밀한 대응 필요할 때
‘화이점동(和而漸同·화합하면서 차츰 가까워진다)’
대신 중국 관영 신민만보(新民晩報)의 인터넷판인 ‘신민망’은 최근 게재한 한 평론에서 미중관계가 퇴로 없는 ‘치킨게임’으로 변질됐다고 진단했다. 치킨게임이란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서로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다. 양국은 자고 나면 서로에게 격한 말을 쏟아붓기 일쑤다. 인터넷 검열에서 촉발된 구글사태에서 시작해 미국의 대만 무기판매, 위안화 환율 절상, 무역 보복, 오바마 대통령과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간 면담, 이란 제재에 이르기까지 마치 물불 가리지 않고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G2의 세계패권전쟁이 시작됐다’ ‘신냉전의 시대가 개막됐다’는 걱정이 쏟아진다.과연 미중관계는 모두 승자가 되려다 파국을 맞게 되는 ‘치킨게임’의 함정에 빠져든 걸까.
아마도 위안화 환율 절상은 가장 격렬한 전선 중 한 곳일 성싶다. 환율 조정은 수출과 경제 성장, 일자리로 직결되는 만큼 양측 모두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환율조작국 지정도 불사할 듯이 위안화 절상을 거세게 압박했다. 이에 중국의 군부에서는 “미 국채를 팔아 응징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때맞춰 중국은 지난해 11월부터 미 국채 대량 매각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제금융가를 아연 긴장시켰다. 중국의 외화보유액 운용에는 정치지도자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이 미국에 강력한 항의와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도 애써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약간 달라진다. 중국은 작년 12월 한 달 동안 388억달러어치 미 단기국채를 더 판 대신 장기국채를 46억달러어치 더 사들였다.연간으로 봐도 단기 국채보유량은 955억달러 줄었지만 장기국채는 1235억달러 더 늘어났다. 미국의 제로금리 탓에 단기국채의 경우 이자가 거의 없지만 장기국채는 이자가 연 2∼3%에 이른다. 중국이 미 국채 매매과정에 경제실익을 따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으로서도 통화전쟁이 몰고 올 재앙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미 국채의 대량매각에서 통화전쟁이 불붙게 되면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치명적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만 무기판매와 달라이 라마 문제도 서로 ‘금도’를 넘지는 않고 있다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평가다. 오바마 대통령은 달라이 라마를 정치적 지도자가 아닌 ‘종교적 지도자’로 만나며 중국을 세심하게 배려했다.중국도 급박한 상황에서 미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호의 홍콩 입항을 허용하는 유연함을 보여줬다. 또 양국의 최고지도자들은 아직까지 말을 아끼고 있다. 양국 모두 ‘치킨게임’의 함정을 알고 있으며 더 이상의 갈등 확산을 바라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저우원중(周文重) 주미 중국대사는 최근 4년간의 재직을 마치고 떠나면서 “중미관계는 서로 화합하면 이롭고 싸우면 해롭다”는 말을 남겼다. 양국의 최고지도자들이 자명한 이치를 모를 리 없다. 다시 ‘화이점동’이 화두로 등장할 공간은 남아 있는 셈이다. G2의 패권경쟁은 결코 우리와도 무관치 않다. 원화 절상이나 무역 분쟁의 후폭풍이 언제든지 몰아닥칠 수 있고, 북핵 6자회담 등 주요 외교·군사현안마다 양국 관계가 중대변수로 작용할 게 틀림없다.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미중관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냉철한 분석과 기민한 대응이 필요할 때다.주춘렬 베이징 특파원
[격화되는 'G2 패권전쟁']
`발톱` 드러낸 中 v s다급해진 美…세계 곳곳서 `치킨게임`
'有所作爲'와 '세계정부' 충돌대만 무기판매·이란 핵·구글…경제·군사·외교 마찰 확산美 실업 해소·中 고성장 위해 상호협력 '공존 리더십' 절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마주보고 :clear_pop_hidden_delay()>자동차를 몰다 한쪽이 겁에 질려 핸들을 꺾어야 끝나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양국은 지난달 말 이후 불과 12일 동안 전기담요,닭고기,선물용 리본 등을 두고 최고 231%의 보복관세를 주고 받으며 갈때까지 가보자는 기세로 싸우고 있다. 위안화 환율,보호무역,달라이 라마,대만 무기판매,구글 등등 양국 충돌의 키워드는 시간이 흐를수록 쌓여가는 중이다. "중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 외교적 고립이 불가피하다"(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보유 중인 미국 국채를 팔아 미국을 응징해야 한다"(뤄위안 중국 군사과학원 소장) 등의 격앙된 협박도 난무한다. '팍스 아메리카'(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유지하려는 미국과 '유소작위(有所作爲 · 할 일은 한다)'로 무장한 중국 간 :clear_pop_hidden_delay()>글로벌 헤게모니 싸움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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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진하는 중국글로벌 금융위기는 중국의 위상을 'IMF(국제통화기금)를 대체한 나라'로 만들었다. 금융위기 발발 직후인 2008년 말을 전후해 한국 등 6개국은 필요할 경우 자금을 융통할 수 있도록 6500억위안(약 110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중국과 체결했다. 최근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한 :clear_pop_hidden_delay()>그리스 역시 IMF가 아닌 중국에 :clear_pop_hidden_delay()>채권 매입을 요청했다. 사실상 중국이 IMF 역할을 한 셈이다. 중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작년 하반기부터 위안화 무역결제를 실시,미 달러화의 위상에 흠집을 내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아프리카 남미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중국 라인'으로 만드는 중이다. 아프리카엔 채무변제와 경제적 지원,동남아와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남미의 베네수엘라 등과는 기술이전과 자금지원,중앙아시아와는 상하이협력기구를 통한 협력체 구축 등 막강한 친중국 기반을 만들었다. 또 세계를 대상으로 한 자원사냥에 이어 국부펀드인 CIC(중국투자공사) 등을 앞세워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등의 지분을 대규모 인수하고,포드의 볼보를 사들이는 등 신질서를 창출하고 있다. 20년 이상 국방비를 매년 두 자리 숫자씩 늘려 군사대국화도 추구하고 있다. 중국 군부는 :clear_pop_hidden_delay()>장거리 미사일 개발,항공모함 구축 등에 이어 "우주에 군사용 무기를 배치하겠다"(쉬치량 공군사령관)고 선언한 상태다. ◆급박해진 미국미국에 중국은 2009년을 전후로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됐다. 2008년까지만 해도 미 재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하면 위안화 환율 문제가 자동적으로 의제에 올랐다.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중국 정부가 '알아서 기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미국은 중국에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란 핵 제재,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국제공조 등에서 미국 입장에 어깃장을 가장 많이 놓는 나라가 중국이다. 작년 11월 취임 후 처음 중국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찬밥 신세였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푸대접을 받았다. 게다가 경제회복을 위해 수출을 늘리겠다는 오바마 정부의 승부수는 '저평가된 위안화'란 장애물에 걸려 있다.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를 유지하고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벗어나려면 '슈퍼강국 중국'이 아니라 '통제가능한 중국'이 필요하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고 나선 것은 중국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10-10 함수'양국의 갈등은 복잡하게 꼬여 있다. '성장률 10%(중국)'와 '실업률 10%(미국)'의 함수가 걸려 있어서다. 중국은 :clear_pop_hidden_delay()>일자리를 늘리고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려면 10%대의 고도 성장을 유지해야 한다. 고성장을 위해선 수출 증대가 필요하고 이는 미국 시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10%의 실업률에 허덕이는 미국으로선 당장 내수시장 활성화가 어려운 만큼 수출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13억명의 중국시장은 절대적 위치를 차지한다. 미국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여전히 차이나 머니가 필요하기도 하다. 문제는 양측이 서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정치논리에 의한 헤게모니 싸움이 가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핵 전쟁을 하면 모두 망한다는 '상호확증파괴 이론'은 지금 G2 간 갈등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2월 방중 때 클린턴 장관은 양국 관계를 :clear_pop_hidden_delay()>한자 성어인 '동주공제(同舟共濟 · 한 배를 탄 운명)'로 설명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위기에 빠진 지구촌을 구하기 위해선 '동주공제'의 글로벌 :clear_pop_hidden_delay()>리더십이 절실하다.
정치적 계산 깔린 `G2 공방`
'有所作爲'와 '세계정부' 충돌美 "중국 없인 세계문제 못풀어"中 "우리는 G2 아니다"글로벌 역할 놓고 '밀고 당기기'
중국 `美국채 매각` 카드 흔들지만…역풍 딜레마
폭발 직전 환율분쟁국채값 폭락 國富 줄고 달러가치 하락 '이중 부메랑'
美 "환율 조작국 지정할수도"…中 "달러는 물새는 보트"
폭발 직전 환율분쟁칼 빼든 미국수출확대 위해 '절상' 압박4월 재무부 보고서가 시한폭탄반발하는 중국"現환율 합리적 수준" 반박위안화 기축통화 기반 다져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환율 조작국이라고 믿고 있다. "(2009년 1월 티모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환율 문제가 미국에 막대한 불이익을 주고 있다. "(2010년 2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서 가열되기 시작한 미국과 중국 사이의 환율 분쟁이 폭발 직전이다. 앞으로 5년간 수출을 두 배 늘리기로 한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3일 중국의 위안화 저평가 환율 정책을 향해 훅펀치를 날렸다. 중국은 외교부 수준에서 "합리적인 환율"이라고 줄곧 대응했으나 카운터 :clear_pop_hidden_delay()>펀치를 날릴 태세다. 양국 간 환율 전쟁으로 치달을 휘발성이 가장 높은 시점은 오는 4월이다. 미국 재무부가 의회에 제출하는 '국제무역 및 환율정책' 반기 보고서를 통해 중국을 환율 조작국이라고 공식적인 딱지를 붙일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달러,기축통화서 '불안한 화폐'로
주미대사 내정자 非미국통, 中 이례적 용인술 설왕설래
폭발 직전 환율분쟁
오바마-달라이라마 `비공식 면담` 사진 1장뿐…中 배려?
컨센서스 대충돌"중국내 티베트인들" 애써 강조中, 새벽성명·주중 美대사 불러 항의
버락 오바마 :clear_pop_hidden_delay()>미국 대통령이 18일 :clear_pop_hidden_delay()>백악관에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clear_pop_hidden_delay()>라마와 면담을 강행했지만 중국의 반발을 무마하겠다는 모양새를 최대한 취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맵룸에서 달라이 라마와 1시간 넘게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통상 외국의 정상이나 국제적으로 저명한 인사를 만날 때는 공식 집무실인 오벌 :clear_pop_hidden_delay()>오피스에서 회동하지만 중국을 의식해 외교적 격식을 낮춘 것이다. 면담도 언론에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백악관은 후에 자체 촬영한 사진 한 장만 배포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면담 후 구체적인 브리핑을 하지 않고 자신 명의의 짧은 성명서를 내놨다. 성명서는 "두 사람은 미국과 중국 간의 긍정적이고 협력적인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합의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달라이 라마의 중도적 접근과 비폭력,중국 정부와의 대화 노력을 평가했으며,달라이 라마는 미국이 추구하는 인류가치 등을 평가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 중 눈길을 끈 것은 티베트 지위에 관한 언급이었다. 그는 "티베트의 독특한 종교,문화,언어 정체성 보호와 티베트인들의 인권 보호를 강력히 지지한다"고 말했으나 '중국 내 티베트인들'(Tibetans in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이라고 분명히 했다. 이는 오바마가 중국이 요구한 대로 티베트를 중국의 영토로 인정했으며,달라이 라마는 정치적 지도자가 아니라 정신적 지도자로 면담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오바마와 달라이 라마의 면담을 강력히 반대해온 중국은 격앙했다. 중국 외교부는 마자오쉬 대변인 명의로 19일 새벽에 "중국은 미국에 강한 불만과 함께 결연한 반대의 뜻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양국 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의 입장을 존중해 실질적이고 유효한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어 주중 미국 대사를 소환하기도 했다. 향후 미국의 대응 추이에 따라 중국이 대응수위를 조절하겠다는 경고로 보인다. 중국 언론들은 양국 관계가 상당 기간 냉각될 것이라는 미국 :clear_pop_hidden_delay()>전문가들의 시각도 소개했다.
워싱턴의 人權 "中도 예외 없다"…베이징의 主權 "내정간섭 마라"
컨센서스 대충돌몰아 붙이는 美: 수단 민간인 학살의 배후…中 국영기업 주식매각 압박맞받아치는 中 : 패스트푸드 KFC 불매운동…美 공격 위한 100만 해커 양성
중국의 해커가 반정부인사의 G메일(구글의 이메일)계정을 검열한 데서 비롯된 :clear_pop_hidden_delay()>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에 엄청난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인터넷을 통한 표현의 자유는 기본적 권리"(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라는 미국의 공격에 대해 중국은 "서방사상의 식민지가 되지 않을 것"(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이라고 반격했다. 워싱턴의 컨센서스가 '인권'이라면,베이징의 컨센서스는 ':clear_pop_hidden_delay()>주권'인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달라이 :clear_pop_hidden_delay()>라마 면담을 놓고 양국이 맞서는 것이나,류샤오보 :clear_pop_hidden_delay()>변호사 등 중국의 반정부 인사에 대한 구속을 놓고 벌이는 설전도 따지고 보면 인권과 주권의 대립이다.
◆'학살주(株)'를 처분하는 미국
G2스타워즈 가열
컨센서스 대충돌中, 인공위성 등 우주무기 강화美, 재정압박 감수 국방비 증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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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고려의 바람, 몽골에 닿고 몽골의 바람, 고려에 부니
몽골 알타이의 서북단에 자리한 고원 도시 바얀올기에서 선참으로 찾아간 곳은 바얀올기 박물관이다. 지난해 개관 60돌을 맞았다고 한다. 지역 박물관치고는 내용이 꽤 알차다. 3층짜리 건물의 1층은 선사시대부터 남겨 놓은 역사유물과 각종 동식물의 박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2층은 이곳 사람들의 처절한 반청(反淸)독립 투쟁사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생생한 유품들과 사진으로 꾸며졌다. 3층은 생활관인데 바위 그림과 적석목곽분, 돌사람과 오보, 쟁기와 맷돌, 곰방대와 안장, 먹을거리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것과 유사한 용품들이 눈에 띄어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낫. 얼개미 등 각종 농기구(바얀올기 발물관 소장)
이러한 유사품들은 여기 말고도 홉드 향토박물관이나 울란바토르의 민족사박물관에서도 적잖게 발견된다. 사실 몽골을 여행하다 보면 체형이나 인성에서부터 세세한 생활 습속이나 용기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닮은꼴이 많아서 의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물론 연구자들마저도 이러한 유사성에 관해 종종 대서특필한다. 심지어 정치판에서는 이러한 유사성을 앞세워 두 나라 간의 ‘국가연합’ 같은 엉뚱한 호기를 부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역사성은 무시한 채 유사성만 강조한 나머지 우리 문화의 원형(뿌리)을 몽골에서 찾는다든가, 몽골에 대한 ‘문화적 향수’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유사성을 과장하는 경향은 경계해야 한다는 이론(異論)도 일고 있어 주목된다. 그러니 지금 시점에서 이 문제에 관해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 문제에 관해선 적어도 두 가지 맥락에서 접근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역사적 맥락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적 맥락이다. 역사적 맥락은 다시 두 차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나는 고대의 역사적 및 문화적 공통 뿌리(원류)이고, 다른 하나는 중세의 고려-원 시대에 일어났던 이른바 ‘고려풍’과 ‘몽골풍’ 및 그 여파이다.
두 나라는 혈통적·언어적으로 동군·동족
몽골인과 한국인이 역사적 및 문화적 공통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같이 인류의 3대 인종군 가운데 몽골로이드, 그것도 친연성이 한 층 더 강한 북방 몽골로이드에 속한다. 그래서 황갈색 피부, 검고 곧은 모발, 적은 체모, 중·단두형 머리, 작은 키, 평평하고 광대뼈가 두드러진 얼굴, 검은 눈, 미간의 낫 모양 주름(몽골주름), 엉덩이의 몽골반점 등 형질학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인종군과 더불어 3대 어족(語族) 가운데서 한국어와 몽골어는 다같이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이를테면 두 나라는 혈통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동군(同群)·동족(同族)으로서 그 시원은 선사시대의 70만~8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생인류로서 현재를 사는 두 인종의 직접적 조상은 역사시대의 동호(東胡)나 흉노(匈奴)로 헤아려 진다. 그런데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단군 국조로부터 치면 4000여년이 되지만, 몽골족은 1200여년밖에 안 된다. 오늘날의 몽골족은 기원후 8세기쯤 헤이룽강(黑龍江) 상류인 에르군네 강 유역에 살던 몽올실위(蒙兀室韋)란 이름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인다. 그러다가 서천해 11~12세기에 몽골의 오논 강 일대까지 진출해 주변의 여러 부족들을 병합한 뒤 칭기즈칸에 의해 1206년 몽골제국이 세워진다. 그 과정은 북방 유목기마민족의 일족으로서 변신하는 과정이며, 우리 한민족과 부단하게 교류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공녀 징집으로 원나라에 고려식 옷·음식 유행
몽골 여인들의 외출 용 모자 ‘고고’
두 나라 간의 유사성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더불어 반드시 현실적 맥락에서도 짚어봐야 한다. 현실적 맥락이란 이렇게 두 나라 간에는 역사적으로 유사성이 형성될 수 있었지만 오랜 역사 과정에서 변화를 거듭함으로써 현실적으론 유사성(공통성)과 함께 차이점(개별성)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명(문화) 간에 일어나는 유형(類型, type)과 양식(樣式, style)상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유형은 문명 간의 공통되는 형태이고, 양식은 드러나는 표현 방식이다. 비유하면 숲과 나무와의 관계이다. 유형만 보고 양식을 무시한다든가, 반면에 양식만 보고 유형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현실적 맥락을 이어준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고려-원 시대에 일어났던 이른바 ‘고려풍’과 ‘몽골풍’이다. 고려는 후반 30년간(1231~1259년) 몽골의 일곱 차례 내침을 막아내고 근 100년간(1259~1351년)의 간섭을 슬기롭게 타개함으로써 당시 몽골 중심의 천하에서 자주권을 지켜낸 유일한 나라이다. 그리고 원종은 태자의 신분으로 원 세조 쿠빌라이를 찾아가 원이 고려의 풍속을 고치도록 강요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불개토풍’(不改土風)이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렇지만 막강한 원의 끈질긴 간섭과 강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문화적 접변(接變)으로 인해 이러한 ‘불개토풍’ 약속은 사실상 유명무실되고 말았다.
카자흐인이 만든 과자에 찍힌 ‘고려풍’ 무늬
원은 고려로부터 인삼을 비롯한 특수약재와 청자. 비단. 담비가죽. 사냥매 등 진귀품을 조공의 이름으로 요구하고 해마다 양곡을 징발해 갔다. 그런가 하면 고려의 세자들을 인질로 잡아놓고 세뇌교육을 시킬 뿐만 아니라 원 세조의 딸을 비롯해 황실의 공주들을 고려왕의 왕후(모두 7명)로 삼게 하며 왕들까지도 몽골식 이름을 강요했다. 관직 이름에서도 부대를 ‘애마’(愛馬, 아이막), 역체관을 ‘탈탈화손’(脫脫禾孫, 톡토하순), 상관을 ‘나연’(那演, 나잔)이라고 하는 따위의 몽골식 직명이 난무했다.
양국 간의 인적 교류에서 특기할 것은 고려 여자를 진공하는 이른바 ‘공녀’(貢女)이다. 쿠빌라이는 충렬왕에게 보내는 조서에서 고려와 원은 이제 한집안이 되었으니 서로 통혼해야 한다고 강변하면서 양국 간의 통혼과 공녀를 종용했다. 간섭기 80년 동안 ‘처녀진공사신’이 50여차례나 고려에 와서 해마다 약 150명의 여자들을 징집해 갔다. 그밖에 수시로 뽑아간 여자는 부지기수다. 원에 끌려간 공녀는 대개 황제나 황후, 황족의 궁인이나 시녀가 되었다. 원 말엽에 궁중의 급사나 시녀는 그 태반이 고려 여성으로 채워졌으며, 지방관까지도 고려 여성을 처첩으로 거느렸다. 그러나 모든 공녀가 이러한 비운에 빠진 것만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순제의 정비가 된 기황후(奇皇后)처럼 일세를 풍미한 여걸도 있었다. 그래서 원나라
천지에 고려식 복식과 음식, 기물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를 두고 ‘고려양’(高麗樣), 즉 ‘고려풍’이라고 일컬었다. 이때부터 어갱(魚羹, 생선국)과 계육(鷄肉, 닭고기), 송자(松子, 잣), 송골병(松骨餠), 인삼주 같은 고려 음식이 원에 유행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몽골의 유제품이나 과자에 찍혀 있는 문양은 이때에 받아드린 것이라고 한다.
고려 때 몽골에서 전래된 한국의 족두리
물론 공녀들이 ‘고려풍’을 일으키는 데 한몫한 것은 사실이지만, 원에 유입된 선진 고려문물도 그 선양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원 세조는 고작 세금이나 거두고 시구나 읊조리는 한인(중국인)들보다 고려인들이 기술면에서 나을 뿐만 아니라 유학경서에도 능통하다고 찬사를 보내면서 ‘고려국유학제학사’(高麗國留學提學司)를 설치해 고려 유학(儒學)을 전문 연구토록 했다.
고려 충선왕은 원나라 수도 연경에 ‘만권당’(萬卷堂)이란 학당을 열어 두 나라의 석학들이 만나 학문을 교류하는 장으로 만들었다. 원에 고려의 뛰어난 불교경전 사경본이 수출되고 고려의 명의 설경성(薛景成)이 원 세조와 성종의 병을 고쳐주었으며, 고려 바둑고수들이 초빙된 사실들은 선진 고려 문물의 유입을 말해준다.
인조 때 몽골 소와 담배 교환… 한우의 조상
우리는 몽골의 어느 박물관에서나 빠짐없이 우리네 것을 빼닮은 연죽(담뱃대)과 담배통을 발견하게 된다. 알고 보니 ‘고려풍’을 타고 들어간 ‘조선풍’이다. 조선 땅에 1636~1637년 심한 우질(牛疾, 소 전염병)이 돌아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인조는 성익(成)을 몽골에 보내 담배와 소를 바꿔오게 한다. 성익은 몽골의 여러 기(旗)를 돌아다니면서 담배가 추위와 정신 집중에 유효하다는 설득으로 몽골 소와 담배를 교환하는 데 성공한다. 이 몽골 소가 오늘날 한우의 조상인 것이다.
이를 계기로 17세기 중엽부터 몽골에는 담배가 퍼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라마교의 나라 몽골에서 승려는 흡연이 불허되기 때문에 돌로 만든 작은 통에다가 담뱃가루와 향료를 섞어 코로 빠는 이른바 ‘코담배’라는 독특한 흡연법이 발생한다. 그러자 귀족들과 일반 목민들까지도 따라함으로써 하나의 사회풍조로 번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만날 때 코담배를 교환하는 인사법이 생겨났다고 한다.
몽골의 ‘고려풍’과 때를 같이해 일어난 것이 고려의 ‘몽골풍’이다. 이 ‘몽골풍’은 주로 복식과 음식, 언어 등 생활문화 영역에서 일어났으며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원래 고려인들은 윗옷과 아랫도리를 하나로 잇고 소매가 헐렁한 포를 입었는데 이때부터 윗옷과 아랫도리를 따로 재단해 이어 붙이고 아랫도리에 주름을 잡아 활동에 편한 몽골식 칠릭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도 예모로 남아 있는 여성들의 족두리는 원래 ‘고고’라는 몽골 여성들의 외출 용 모자였던 것이 들어와서는 예모로 변신한다. 신부의 뺨에 연지를 찍는 화장도 ‘몽골풍’이다. 상투 대신 정수리부터 이마까지 머리를 깎고 가운데 머리카락은 뒤로 땋아 내리는 이색적인 몽골식 개체변발(開剃髮)도 한때 유행했다.
‘마누라’ ‘수라’ 등 다수 낱말 몽골어에 기원
몽골의 쟁기(민족사박물관 소장)
음식문화에서도 일부 ‘몽골풍’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3대 토주의 하나인 소주는 원류를 따져 보면 토착주가 아니라 몽골을 통해 들어온 교류주다. 증류주인 소주는 원래 기원전 3000년쯤에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에서 처음 만들어져 전승되어 왔다. 1258년 몽골군이 이라크를 공략할 때 그 양조법을 배워 와서는 일본 원정을 위해 한반도에 진출했을 때 개성과 안동, 제주도 등 주둔지에서 처음 빚기 시작했다. 고려인들이 그것을 따라 배워 빚어낸 것이 바로 고려 소주(아락주)이다. 그리고 고려는 불교국가라서 육식을 꺼려왔으나 몽골인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고기소를 넣은 만두 같은 육류식품을 접하게 되었다.
오늘도 즐겨 먹는 설렁탕도 양을 잡아 대강 삶아 먹는 몽골의 ‘슐루’라는 음식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제주도를 통해 조랑말이 들어온 것도 이때부터다.
그밖에 우리말로 굳어진 낱말들에서 몽골어의 잔재를 찾아 볼 수 있다. 왕과 왕비에 붙이는 ‘마마’, 세자와 세자빈을 가리키는 ‘마누라’(마노라), 임금의 음식인 ‘수라’ 등 주로 몽골 출신 공주들의 활무대였던 궁중에서 쓰는 이러한 호칭들은 몽골어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벼슬아치’나 ‘장사치’에서 어미격인 ‘치’는 ‘다루가치’(관직)나 ‘조리치’(청소부), ‘시파치’(매사냥꾼) 같은 직업을 나타내는 몽골어의 어미 ‘치’자를 취한 것이다. 이와 같이 ‘고려풍’과 ‘몽골풍’으로 대변되는 고려와 몽골 간의 교류에서 우리는 비록 이질 문명이지만 생산적인 융합이 이루어질 때 문명 본연의 상보적(相補的) 교류가 실현 가능하게 되며, 문명은 모방성이란 근본속성으로 인해 ‘불개토풍’이란 인위적인 제어도 불구하고 전파되고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수용된다는 등 문명교류의 유의미한 원리들을 터득하게 된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반만년 노대국의 중화사상은 한마디로 중국이 원형의 중심에 위치에 있다는 자부심 충만한 세계관이다. 삼각형의 정점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미국, 원의 중심 위치를 회복하려는 중국, 이들 G2 접점에 위치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국에 미ㆍ중 양국은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택해야 하는 대체재가 아니라 함께할 때 더 큰 실리를 얻을 수 있는 보완재와 같은 존재들이다. `친미반중이냐, 반미친중이냐` 하는 식으로 택일에 집착하기보다는 용미용중(用美用中)의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팍스 아메리카’냐, ‘팍스 시니카’냐는 선택이 아닌 세계사적 숙명과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미·중의 틈바구니 속에서 정부와 기업, 개인 모두 능동적인 균세(均勢)와 생존 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예지(豫知)를 비웃는 변수가 너무나 많다. 상식을 깨는 '검은 백조'는 언제, 어디서든 튀어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앞을 좀 볼 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치고 21세기가 '중국의 세기'가 될 수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신(新)제국'적 환상에 들떠 21세기는 또 다른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불과 몇 년 새 이라크의 모래 폭풍과 무너진 월스트리트의 잔해에 묻혀버렸다. '팍스 시니카'는 가정(假定)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인식이 소리 없이 퍼지고 있다. 미·중 병립을 상징하는 '차이메리카(Chimerica)' 혹은 'G2 시대'는 이미 눈앞의 현실이 됐다. 중국 경제의 미래와 관련해 흔히 인용되는 것이 2007년에 나온 골드먼삭스의 예측이다.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2027년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아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오르고, 2050년에는 GDP가 미국의 두 배가 된다는 것이다. 5000년 중국 역사에서 태평성세는 두 번뿐이었다. 당 태종에서 현종에 이르는 약 100년과 강희·옹정·건륭으로 이어지는 청 왕조 중기의 약 100년이 그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대국이 되면 중국 역사의 황금기는 다시 올 것인가. 다양한 전망이 있지만 중국의 부상을 인정하면서도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점에서 지난달 영국에서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는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When China rules the world)』이란 책은 근본적 차이를 보인다. 영국의 역사학자 겸 저널리스트인 마틴 자크는 이 책에서 중국이 미국에 필적하는 초강대국 지위를 확보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확신 아래 '팍스 시니카'의 미래를 묘사하고 있다. 위안화가 달러화를 밀어내고, 뉴욕과 런던 대신 상하이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유럽의 주요 도시들이 오늘날의 로마나 아테네처럼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유물로 전락하고, 중국어가 영어와 나란히 세계 공용어로 자리 잡고, 공자가 플라톤만큼 세계 시민에게 친숙한 존재가 된다는 전망은 사실 진부하다. 정작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근대화는 곧 서구화를 의미한다는 지금까지의 상식이 깨진다는 통찰이다. 자크는 이데올로기 대신 문화가 미래의 가치 기준이 될 것으로 본다. 그는 중국이 21세기의 수퍼파워가 될 수 있는 가장 핵심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면서 중국의 광대한 영토와 인구, 한족이 전체 인구의 92%를 차지하는 문화적 동질성, 자신의 문명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뿌리 깊은 중화(中華)의식은 새로운 근대성을 규정하는 문화적 지배력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200년의 굴욕을 딛고 부활하는 중국은 미국의 이미지를 모방한 중국이 아니라 유구한 중국 문명의 이미지에 충실한 중국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그는 '팍스 시니카'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팽창주의를 지향했던 '팍스 브리타니카'나 '팍스 아메리카나'와 달리 조화와 안정을 중시하는 평화주의적 성격을 띨 것으로 낙관한다. 중국 자신이 세계의 중심, 곧 중원(中原)이라고 믿기 때문에 공격적 팽창주의를 지향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과연 그럴까. 티베트에 이어 신장(新疆)위구르 유혈 사태에서 현재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억압적 태도를 보면서도 '팍스 시니카'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것일까. 한 국가의 위대함은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와 그것을 고칠 줄 아는 능력에 있다. 병을 숨기고 감추는 것이 아니라 폭로하고 까발려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중국은 여전히 미국에 못 미친다. 미국의 역사는 환부(患部)를 과감히 드러내고, 임시변통의 대증요법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원인치료를 하는 과정이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상찬했던 '미국의 민주주의'였다. 지금 중국은 피가 철철 나는 허벅지의 상처를 손바닥으로 덮어 누르고 있다. 잠깐은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처는 안으로 곪아 언젠가는 터지게 돼 있다.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의 소수민족들은 빵과 자유의 맞교환을 거부하고 있다. 지하의 파룬궁 신도와 기독교인 수를 합하면 7500만 중국 공산당원 수보다 많다. 토지 수용에 원한을 품은 농민들과 경제적 윤택함을 당연하게 여기는 신세대가 정치적 자유의 벽 앞에서 느낄 당혹감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중국이 '팍스 시니카'를 통한 외부와의 조화를 추구한다면 우선 내적 조화부터 이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팍스 시니카'는 '순한 판다'보다 '성난 드래곤'의 이미지로 세계인에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