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그림
자연 속에 노출된 바위나 동굴 벽에 여러 가지 동물상이나 기하학적 상징 문양을 그리거나 새겨놓은 그림.
본문
암각화·암화·암벽각화·암벽화라고도 한다.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나타나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였고 청동기시대에 와서 가장 많은 제작이 이루어졌다. 선사시대의 신앙과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였으며 주로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내용이 많다.
제작기법은 동물·식물·광물성 물감으로 칠하거나 뿌려서 그리기도 하고, 돌이나 금속으로 쪼기, 갈기, 그어 파내기 등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물감으로 그린 것은 한국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중국·몽골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멕시코 인디언 등은 지금까지도 물감으로 바위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주로 구석기시대의 동굴 벽화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주로 수렵인·어로인·유목민 등이 제작한 것으로, 그림의 소재도 수렵·어로·목축이 많고 때로는 기하학적인 도형이나 문자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발견된 대표적인 바위그림은 울산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울주천전리각석(국보 제147호)·고령양전동암각화(보물 제605호) 등이다. 울산 반구대암각화에는 여러 가지 동물과 물고기, 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울주 천전리와 고령 양전동 암각화에는 추상적인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밖에도 영일 칠포리, 경주 석장동 금장대, 남원봉황대 등과 같이 산과 물, 옛 무덤과 어우러진 바위그림이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다.
※라스코 동굴(Lascaux)은 프랑스 남서쪽에 있는 복잡한 동굴이다. 이 동굴 안의 기원전 15000년~13000년으로 추정되는 후기 구석기 시대그림이 유명하다. 원래 동굴의 위치는 도르도뉴 주의 몬티냐크 마을 근처에 있다. 이 그림들은 사실적으로 그려진 큰 짐승들로, 그중에는 오록스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그 근처의 화석에 의하면 당시에 살았던 동물이다. 1979년에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후기 구석기인들은 동굴 내부에 그 지역에 서식하고 있던 큰뿔사슴 등의 채색화를 그려 놓았는데,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북에스파냐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유명하다. 아시아 지역에는 중국의 저우커우뎬[周口店], 북베트남 하노이 교외의 호아빈 ·박손 산지에 동굴 유적군이 있다.
신석기에서 중석기에 이르는 기간에는 횡혈(橫穴)이나 카타콤베 등 동굴을 파서 분묘 ·주거 ·신전 ·사원 등으로 이용하였는데, 인도의 아잔타, 중국의 둔황[敦煌] ·룽먼[龍門] 등의 석굴사원 등 인공석굴이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구석기인들의 주거지로 충북 제천시의 점말동굴, 충북 청원군의 두루봉동굴, 제주 북제주군의 빌레못동굴 등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알타미라동굴 [Altamira cave]
요약
에스파냐 북부 칸타브리아 지방 칸타브리아주(州)에 있는 구석기시대 후기의 동굴
1)역사이전의 흔적
주구점
북경시 방산구 주구점에 위치해 있는 룡골산은 중화민족의 시조인 고대원인이 살던 옛터이다. 이전에 사람들은 만두처럼 생간 이 작은 산에서 고대동물의 화석을 자주 발견했는데 이런것들을 중약재로 쓰곤 했다. 중의들이 이런 이라고 화석들을 룡골이라고 불럿기 때문에 이 작은 산은 룡골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1929년 중국학자 배문중 선생의 지휘하에 진행된 발굴에서 첫 베이징 원인의 완정한 두개골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인류의 역사는 50만년 전으로 앞당겨 졌다.
그후 이곳에서 출토된 6구의 두골과 15개의 하악골, 150여 개의 이빨, 상당수의 팔다리뼈 그리고 출토층의 과학적인 측정에 근거하여 베이징 원인은 지금으로부터 70~23만년 전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때로부터 주구점 베이징 원인의 유적지는 세계의 유명한 문화성지로 되었다. 1933년 룡골산 꼭대기에 있는 동굴에서 또 지금으로부터 18만년 전 산정동인 의 인류화석이 발견되었다.
1973년 룡골산 동북쪽에서 발견된 신동인의 이빨화석은 지금으로부터 10만년 전 베이징 원인과 산정동인 사이의 인류 화석이다. 룡골산의 고찰발굴에서 또한 대량의 석기와 골기 그리고 불을 사용한 유적지 등 풍부한 고고학적 실물들이 출토 되었다.
(2)역사에서 등장
기록에서 최초로 나타나는때는 순임금과 관련된 전설로서, 기원전 23세기 말에 우임금은 네 명의 신하들을 유주로 추방했다고 하는데 고대의 지리지에 따르면 유저는 지금의 창평에서 19km쯤 떨이진곳이였다고 한다
또한 주 초기B.C. 1122년경에 주 무왕은 황제의 자손을 거느리고 이 지역에 정착하였다고 하는데, 위치는 서북 성문 밖으로 1.6km쯤 떨어진 곳인데 지금은 황정이 서 있다
일찍이 화북(華北) 대평원과 북방의 산간지대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서 역사상에 등장하였다. 베이징은 처음에는 ‘계() )’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그 고대취락의 위치는 현재 노구교[蘆溝橋]가 있는 곳, 즉 예로부터 융딩강의 도하지점(渡河地點)이 되어왔던 곳에 인접한 지추[丘]라는 작은 언덕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周口店 의 북경원인유적 ( Peking Man Site at Zhoukoudian : 문화, 1987 )
- 베이징 남서쪽 42㎞지점에 위치한 주구점에서 홍적세 중기에 살았던 고인류인 시난드로푸스 페키넨시스(Sinanthropus Pekinensis:북경원인의 학명) 유물이 발견됨
-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학명)에 해당되는 이 고인류는 B.C 18000-11000년 까지 연대가 거슬러 올라감
- 이 유적은 오래전 아시아대륙의 인류사회를 상기시켜주는 특별한 유적인 동시에 인류진화 과정을 잘 나타내주는 귀중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