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복숭아죽

쑨아이 2010. 1. 10. 23:01

‘복숭아 죽’

연분홍 빛 볼 화장을 한 복숭아들이 수줍음을 머금고 있다. 주인이 햇볕을 단단히 붙잡아둔 동글 둥글 복숭아들의 싱싱함이 행인들의 눈을 사로잡아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계절의 행간을 읽을 수 있는 복숭아의 계절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백도와, 화려한 홍도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그리운 추억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복숭아꽃을 보면 운동회 때 만들던 둥그런 대나무에 달았던 하얀 꽃들의 율동이 아른거린다. 홑겹이 아니고 여러 겹으로 만들어 탐스럽고 푸근한 느낌으로 운동회의 하이라이트였던 백도화의 물결은 단연 압권이었다.

벌레 먹은 복숭아를 먹으면 미인이 되고, 복숭아 잎으로 목욕을 하면 피부를 곱게 해준다는 말에 벌레 먹은 복숭아를 먹으려고 일부러 불을 끄고 눈을 질끈 감고 먹던 어린 시절, 피부미인이 되어보려고 복숭아 잎을 열심히 모았던 순수했던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나온다. 아름다운 꽃과 과일 잎과 씨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알뜰한 복숭아는 잊을 수 없는 인연과 그리움이 되어있다.

이맘때 일이다. 둘째 출산 후 산후조리를 잘 못하였는지 아랫배가 몹시 아프고, 기침을 하고 있는 나에게 옆집 할머니께서 찾아오셨다.

불쑥 죽 한 그릇을 내민다.

“복숭아 죽인데 먹어봐”

“네? 복숭아 죽요?”

“아가는 내게 맡기고 먹어”

“네...”

옆집 할머니의 정성을 생각하여 한 숟가락씩 뜨다보니 달콤함에 복숭아 죽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다음날 어찌된 일인지 복숭아 죽이 먹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할머니께서는 복숭아 죽을 일주일 내내 쒀주셨고 덕분에 아랫배도 차차 나아졌고, 기침도 멈추었다. 알고 보니 할머니께서도 출산 후 같은 증상으로 고생을 하고 있을 때, 복숭아 죽을 먹고 좋아지셨다고 한다.

이 고마운 중국 할머니와의 인연은 중국유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혼 후 꿈에 부푼 유학생활은 임신과 출산 육아로 접어야만 했었다. 인생이 희극과 비극의 쌍곡선을 타고 걸어가는 간다고 했던가. 그 아슬 했던 기억은 바로 출산의 고통이었다. 이국땅에서 두 번의 난산은 사투로 이어졌고, 어렵사리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출산 다음날부터 중국 할머니는 나의 육아가 미덥지 못했던지 매일 최소 한번은 들렀고, 그 즐거운 간섭은 귀국하는 날 까지 계속 되었다. 88세의 나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건강하셨던 할머니는 복숭아 마니아였다. 매일 복사꽃차를 마시면서 나에게도 어김없이 권하였고, 장수의 비결이 바로 복사꽃차에 있다며 복숭아의 효능을 침이 닳도록 설명하여 주었다. 어느 날인가 내키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초대로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가 복숭아 전문가다운 할머니의 면모를 보게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복숭아로 만든 인형부터 시작해서 복숭아나무로 만든 도장, 복숭아 그림으로 벽장식을 도배 하다시피 하였다. 여기저기 오글오글한 복숭아씨를 버리지 않고 모아서 일렬로 줄을 세워놓았다. 언제부터 복숭아에 관심을 두셨는지 여쭈어 보았더니 출산 후, 복숭아 죽을 먹고 몸이 회복되고 부터라고 한다. 복숭아는 단순한 힘을 가진 이상이 된 것이다.

귀국하는 날 선물로 복숭아나무로 만든 도장을 내밀던 할머니의 손은 오글오글 복숭아씨를 닮아 있었다. 그 손이 몹시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포근한 감자를 삶아 물을 붓고 끓인 후, 마지막으로 갈아놓은 복숭아를 넣고 저으며 ‘복숭아 죽(桃羹)’끓이는 방법을 전수해주시던 할머니가 눈물 나게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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